연봉 2억 받아도 부자가 못 되는 이유

연봉 2억 받아도 부자가 못 되는 이유
유럽 고소득자 10년을 옆에서 지켜보며

독일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면 이런 사람들을 꽤 만나게 된다. 연봉이 높고, 직함도 좋고, 생활도 안정돼 보이는데 — 정작 자산 이야기를 하면 말이 흐려지는 사람들.

나도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됐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세금 이야기는 이미 다른 글에서 했다. 실제 급여명세서를 공개한 글인데, 보면 좀 놀랄 수도 있다. 오늘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세후 실수령을 손에 쥔 다음에도, 왜 돈이 쌓이지 않는가.

첫 번째 함정 — 회사에서 차를 준다고 했을 때 나는 좋다고 했다. 그게 실수였다

유럽에서 일정 직급 이상이 되면 Company Car를 받는다. 처음엔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차 값 아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독일 세법에서 Company Car는 현물 급여(Sachbezug)로 간주된다. 차량 신차 가격의 1%가 매달 소득에 추가되어 과세된다. 4만 유로짜리 차라면 매달 400유로가 소득으로 잡히고, 최고 세율 구간 42% 적용 시 실질 세금 부담이 월 170유로 안팎이다. 출퇴근 거리에 따라 추가 과세도 붙는다.

급여명세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 나는 이걸 몰랐다. 공짜로 차를 타는 게 아니라, 매달 돈을 내고 타는 구조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우자도 차량이 필요하다. 프랑크푸르트 외곽이나 Bad Homburg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면 차 없이는 아이 픽업도, 장보기도 쉽지 않다. 배우자 차량의 보험료, 유류비, 정기 점검까지 합치면 월 400~500유로는 기본이다.

Company Car 세금 170유로에 배우자 차량 유지비 450유로. 차량 관련 지출만 월 600유로를 넘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계산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두 번째 함정 — 언제 바뀐 건지 기억이 안 난다

5년 전 우리 가족의 여름 휴가는 차로 3시간 거리였다. 지금은 비행기다. 언제 바뀐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이게 Lifestyle Inflation이다. 유럽에서는 이게 한국보다 훨씬 조용하게, 그래서 더 위험하게 일어난다.

한국에서의 소비는 비교적 눈에 보인다. 차를 바꾸거나, 명품을 사거나. 유럽에서는 다르다. 동네가 한 단계 올라간다. 방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한다. 아이 방과후 활동이 하나 둘 늘어난다. 외식 빈도보다 외식 단가가 올라간다.

각각은 100~200유로 차이다. 그런데 이게 동시에 다섯 가지가 일어나면 월 지출이 조용히 1,000유로 올라가 있다. 그리고 한 번 올라간 생활 수준은 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가 다니던 활동을 끊기 어렵고, 이사한 동네에서 다시 내려가기도 어렵다. 연봉이 올랐는데 왜 더 빠듯한 느낌인지 — 그 이유가 여기 있다.

세 번째 함정 — 연말에 처음으로 가계부를 써봤다

연말에 처음으로 한 해 지출을 정리해봤다. 외식에만 연간 6,000유로가 나가 있었다. 월 500유로다.

그 돈을 매달 ETF에 넣었으면 지금쯤 얼마였을까. 계산하고 나서 좀 멍했다. 월 300유로가 25년 후 얼마가 되는지 궁금하다면, 독일 세금까지 반영해서 직접 계산해본 글이 있으니 읽어보길 권한다.

고소득자들이 자산을 쌓지 못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통장에 잔고가 있으니 급하지 않다는 감각. 이번 달은 좀 썼지만 다음 달에 또 들어온다는 안도감. 그런데 이 유동성은 착각이다. 고정 지출을 실제로 계산해보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통장 잔고는 그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냥 숫자가 있을 뿐이다.

이 착각 속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쓰고 남은 돈으로 투자하기”다. 남는 돈은 대부분 남지 않는다.

네 번째 함정 — “이 정도 버는데 ETF 몇 백 유로가 뭐가 달라지겠어”

이게 가장 비싼 생각이다.

월 300유로를 25년 굴린 사람이 월 3,000유로를 5년 굴린 사람보다 훨씬 많은 자산을 갖게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복리는 금액보다 시간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소득자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소액 투자가 우스워 보이고, 언제든 크게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런데 그 “언제든”은 대부분 오지 않는다.

소액이라는 이유로 미루는 동안 대체 불가능한 것이 사라진다. 시간이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얼마씩 시작하면 되는지는 Trade Republic을 직접 써본 후기 글에서 플랫폼 비교부터 실제 세금까지 정리해뒀다.

그래서 나는 순서를 바꿨다

2021년, 나는 하나의 목표를 숫자로 만들었다. 2030년까지 순자산 60만 유로. 역산했다. 지금 얼마가 있고, 매년 얼마가 추가되어야 하는지.

방법은 단순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투자금을 먼저 뺀다. 남은 돈으로 생활한다. 처음엔 빡빡했다. 그런데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적응한다. 한 번 구조가 만들어지면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시스템이 대신한다.

2026년 현재 목표의 약 70% 수준까지 와 있다. 정확한 숫자를 말하기 어려운 건 포트폴리오 안에 네덜란드 부동산이 포함돼 있어서다. ETF와 주식은 실시간으로 보이지만 부동산 평가액은 시점마다 달라진다. 그래서 “약 70%”가 더 정직한 표현이다.

2030년까지 4년. 나머지 30%는 복리와 추가 투자가 동시에 작동하면 충분히 가능한 범위다.

마치며 — 당신의 이번 달 저축률은 몇 %인가

지금 당장 계산해보자. 이번 달 실수령 대비 실제로 저축하거나 투자한 금액의 비율.

10% 미만이라면 연봉이 얼마든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30% 이상이라면 지금 꽤 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숫자를 모른다면 — 그걸 아는 것이 이 글에서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연봉이 높다는 건 게임을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동으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Company Car의 실제 비용을 모르고, Lifestyle Inflation을 방치하고, 유동성의 착각 속에서 투자를 미루면 — 연봉 숫자와 실제 자산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다.

부자가 되는 건 얼마를 버느냐보다, 그 안에서 어떤 구조를 만드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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