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지채용의 현실|주재원과 가장 달랐던 점

현지채용으로 시작해서 느낀 것 — 주재원과 나는 뭐가 달랐독일 현지채용으로 취업하면 주재원과 무엇이 다를까? 나 역시 처음 독일에서 현지채용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처음 유럽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주재원이 아니었다. 현지채용이었다.

한국 본사에서 파견 발령을 받고 온 것도 아니고, 집도 회사가 구해준 게 아니었다. 석사를 마치고 그냥 한국계 기업 채용 공고에 지원해서 뽑혔다. 그때는 이 차이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냥 “취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그런데 출근 첫 달부터 미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 같은 층, 같은 회의에 앉아 있는데 어딘가 결이 달랐다. 옆자리 과장님은 주재원이었다. 회사가 집을 구해줬고, 아이 학비를 대줬고, 몇 년 후엔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었다. 나는 그냥 여기 사는 사람이었다. 누가 대놓고 차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티가 났다. 인사팀 공지도 주재원용, 현채용이 따로 왔다. 회식 자리에서 “귀임하시면”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과, 애초에 그 말이 해당되지 않는 사람. 그 온도차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더 크게 다가온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정규직이 아니었다. 1년 계약직이었다. 취업했다는 것에 안도했던 것도 잠시, 계약서를 다시 읽어보니 “1년 후 갱신 여부는 회사가 결정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주재원은 본사 소속으로 신분이 이미 보장된 사람들이었고, 나는 매년 재계약 여부를 통보받는 입장이었다. 그 1년짜리 계약서를 손에 쥐고 있으면, 유럽에 살고 있다는 사실보다 다음 해에도 여기 있을 수 있을지가 더 급한 고민이 된다. 이 불안정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 설명이 안 된다.

눈에 보이는 차이도 있었다. 주재원은 집, 차, 이사비, 자녀 학비까지 회사가 챙겨준다. 귀국 항공권도 매년 나오고, 정착지원금도 따로 있다. 나는 전세 계약도 내가 했고, 차도 내 돈으로 샀다. 같은 직급, 비슷한 업무인데도 실수령액 기준으로 체감상 20~30% 정도 차이가 났다. 처음엔 이 차이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건 손해가 아니라 그냥 다른 계약 구조였다.

가장 크게 체감한 차이는 임기였다. 주재원에겐 3년, 길어야 5년이라는 돌아갈 날짜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정해진 날짜가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서야 이 차이가 단순히 회사 내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EU 블루카드 받으면 뭐가 좋은가에서도 짚었듯, 블루카드는 원칙적으로 현지 법인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만 신청할 수 있다. 본사 소속으로 파견된 주재원은 애초에 대상이 아니다. (관련해서 독일 블루카드 신청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7가지에도 이 주재원 예외 조항을 자세히 정리해뒀다.) 즉 주재원과 현채는 처음부터 비자 트랙 자체가 갈라져 있었다. 주재원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구조적으로 “언젠가 돌아갈 사람”으로 설계돼 있고, 현채는 처음부터 “여기 남을 사람”으로 시스템이 짜여있는 거였다. 계약서의 임기가 아니라, 국가 제도 자체가 이미 그렇게 나뉘어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주재원으로 온 분들 중에 오히려 임기가 끝나갈 때쯤 현채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이가 국제학교에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임기가 끝났다고 한국으로 데려가면 다시 적응 문제가 생긴다. 본사로 돌아갔을 때 마땅한 자리가 없을 거라는 걱정도 크다. 몇 년 해외에 있었다는 이유로 본사에서 자리를 잃는 경우를 실제로 여러 번 봤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여기 남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 밑에는 문화적인 이유도 있다. 유럽에서 몇 년 살아본 사람은 이곳의 시간 쓰는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 아이 방학이면 회사도 눈치 안 보고 휴가를 쓰는 분위기, 저녁 6시면 다들 퇴근해서 가족과 밥을 먹는 일상, 주말엔 이메일 한 통 안 오는 정적. 한국에서는 이런 시간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면, 여기서는 그냥 기본값으로 주어진다. 몇 년 이 리듬에 익숙해지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가 예전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이 교육 문제와 이 생활 리듬,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주재원들의 고민은 점점 현채 전환 쪽으로 기운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과장님은 결국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본사에 돌아가서 한동안 마땅한 자리를 못 찾고 이 부서 저 부서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유럽에서 몇 년간 쌓은 경험이 본사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 1년짜리 불안한 계약서를 붙들고 있던 내가 오히려 더 오래 버틴 셈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더 잘된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그 갈림길에서 각자 다른 걸 얻어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현채로 유럽 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처음엔 옆자리 주재원과 나를 자꾸 비교하게 될 것이다. 저 사람은 집도 공짜고 차도 공짜인데, 나는 1년짜리 계약서 한 장 들고 불안해하고 있나 싶은 순간이 분명히 온다. 그런데 그 비교는 오래가지 않는다. 몇 년만 지나면 완전히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여기서 뿌리를 내리고 싶은가, 아닌가. 그 답에 따라 처음의 그 격차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지원을 못 받은 게 아니라, 애초에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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