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승진은 어떻게 결정될까?

유럽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승진 방식이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연말 인사평가를 거쳐 승진이 결정된다. 1년 동안의 성과를 평가하고, 정해진 승진 시즌에 직급과 연봉이 함께 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나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독일을 비롯해 내가 겪은 유럽 기업은 좀 달랐다. 승진이 꼭 연말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역할과 책임이 생기는 순간마다 승진과 연봉 협상이 그 자리에서 함께 이루어졌다. 이 차이를 이해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회사는 도대체 누구를 승진시키는 걸까.

물론 유럽 기업도 정기 성과평가와 연봉 인상 제도는 있다. 하지만 회사는 그 주기와 별개로 계속 변한다. 누군가 퇴사하고,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조직이 개편된다. 이때 새로운 포지션이 생기면 회사는 외부 채용부터 보지 않는다. 먼저 내부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내부 직원이 새 포지션으로 옮기면 업무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맞는 직급과 연봉을 그 시점에 바로 협의한다. 한국이 “성과를 증명하고 연말에 승진”이라면, 여기는 “역할이 바뀌는 시점에 처우도 같이 바뀐다”는 느낌이었다.

이 문화는 핵심 인재를 붙잡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같이 일했던 시니어 매니저 한 명은 8년 차였다. 회사에 불만은 없었는데, 본인 시장가치가 궁금해서 다른 회사 면접을 봤고 예상보다 좋은 오퍼를 받았다. 회사는 이 사실을 알고 연말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 주 안에 현재 역할과 처우를 다시 검토해서,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제안했다. 결국 그는 새 도전을 택해 떠났지만, 이 일로 하나는 분명해졌다. 회사가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한 인재라면, 처우 조정을 특정 시즌까지 미루지 않는다.

또 다른 경우는 외주 계약직으로 있던 직원이었다. 엑셀과 데이터 분석 능력이 좋았고, 무엇보다 업무 태도가 꾸준했다. 그러다 해당 부서 파트장 자리가 갑자기 비었다. 회사는 외부 관리자를 뽑는 대신 그에게 먼저 제안했다. 파트장 역할, 정규직 전환, 새 연봉까지 한 번에 협의됐다. 관리 경험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는 이미 그의 실력과 태도를 오래 지켜보며 검증을 끝낸 상태였다. 능력만큼이나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신뢰가 승진의 기준이 된다는 걸 이때 느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작은 조직을 오래 맡았던 직원의 경우다. 사업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팀원들의 신뢰는 두터웠다. 시간이 지나 회사에 훨씬 큰 사업을 총괄할 리더가 필요해졌을 때, 회사는 외부 채용 대신 그 사람을 택했다. 작은 조직에서 리더십을 증명해온 사람에게 새 포지션과 함께 급여도 큰 폭으로 올려줬다. 그때 깨달았다. 리더십은 면접에서 확인되는 게 아니라, 평소의 조직 운영으로 이미 검증되고 있었다.

세 사례를 돌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승진하지 않았고, 성과만 뛰어났다고 기회를 얻지도 않았다. 회사가 본 건 세 가지였다. 이미 능력이 검증됐는지, 동료와 상사의 신뢰를 받는지, 새 역할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지. 결국 회사는 “다음 직급에서 잘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승진은 인사평가 날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겪은 유럽 기업은 조금 달랐다. 평소 어떤 태도로 일했는지, 어떤 성과를 꾸준히 쌓아왔는지, 주변에 어떤 신뢰를 만들어왔는지, 그리고 새 기회가 생겼을 때 회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누군지. 이 전부가 모여 승진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승진은 단순한 보상이라기보다, 회사가 더 큰 책임을 맡길 사람에게 하는 투자에 가까웠다.

한국과 유럽의 승진 제도는 분명 다르다. 그런데 한 가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좋은 회사일수록 중요한 자리가 생기면 이미 검증된 사람을 찾는다. 직급은 나중에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건 다음 직급의 이름이 아니라,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신뢰를 쌓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이번 연말에 승진할 수 있을까”보다 이 질문을 먼저 해본다. 회사에 새로운 자리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내 이름이 떠오를까.

함께 읽으면 좋은 글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